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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오디세이 2016] “여기엔 미래가 없다며 엄마는…” 탈북자 사연에 눈물바다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18-01-02 10:09    1,070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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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오디세이 북·중 접경 답사 사흘째인 지난 5일 오전. 참가단을 태운 버스에 갑작스레 휴대전화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요란해졌다.

 중국 창바이(長白)현을 출발한 버스가 압록강변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자 차창 너머로 북한 혜산시 풍경에 시선이 집중된 것이다.
 

6일간 옌지~다롄 1750km 답사
버스 창 너머로 보인 북한 풍경에
청년들 연신 카메라 셔터 눌러
압록강엔 사금 채취하는 모습도
100년 만에 재개장한 호시 무역구
“신 압록강대교 열려야 살아나”



북한 내 한류(남한 드라마·영화·가요 등) 유입과 탈북자 실태를 연구해 온 강동완 동아대 교수가 마이크를 잡았다. “저기 오른쪽 깔끔하게 잘 단장된 흰색 건물은 김일성·김정일 우상화를 위한 노동당 사적관이죠”라는 설명에 청년·대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한가운데 우뚝 선 탑에 관심이 쏠리자 강 교수는 “김일성 사망(1994년) 이후 북한 곳곳에 세워진 이른바 ‘영생탑’입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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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 접경지역을 달리는 버스 차창 밖 압록강 건너로 펼쳐진 북한 마을의 풍경에 시선이 쏠렸다.

청년들이 호기심에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다.

혜산에서 버스로 꼬박 4시간을 달려 김형직읍까지 220㎞ 구간은 생생한 북한 실상 교육장이 됐다. 여름비가 내린 북녘 마을은 파노라마처럼 변경 주민들의 삶을 드러냈다. 불어난 압록강에서는 통나무를 뗏목처럼 엮어 하류로 운반하는 떼몰이가 곳곳에서 포착됐다.

동행한 조선족 가이드 권영범(43)씨는 “조상 때부터 이뤄진 전통적인 목재 운반기법인데 강물의 흐름을 절묘하게 타고 내려가는 모습이 예술에 가깝다”고 말했다. 강가 모래 언덕에선 허리를 굽혀 열심히 뭔가를 걸러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사금 채취를 하는 것으로 북한 당국의 엄격한 통제 아래 작업이 이뤄진다고 한다.

중국 쪽 강둑에는 약 2m 높이의 T자형 철조망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최근 수년간 설치작업이 이뤄졌고 북·중 접경 1400㎞ 대부분을 둘러쳤다고 한다. 감시용 폐쇄회로TV(CCTV)까지 곳곳에 설치돼 탈북자나 밀무역자를 사후에도 추적 단속할 수 있다는 것. 여기에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쪽에는 전기철조망이 새로 설치돼 탈북하거나 북·중 간을 오가기가 훨씬 어려워졌다는 설명이다. “김정은이 집안 단속 하나는 잘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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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수풍댐 일대에서 배를 타고 북한 삭주군 인근을 지나던 청년 오디세이 참가자들이 인사를 건네고 있다. 일부 북한 주민은 손을 흔들기도 했다.

강동완 교수는 혜산 출신 탈북자 유다정(가명·25)씨의 사연을 소개해 일행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탈북 뜻을 밝힌 유씨에게 어머니는 “그래 가라. 여기엔 네 미래가 없다”며 허락했다. 한국에 정착한 유씨는 어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에 브로커를 통해 연락했지만 강을 마주한 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려야 했다는 것.

압록강 하구 쪽에서는 한때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북한 수풍댐과 만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43년 만들어진 이 댐은 과거 남한 지역에도 전기를 공급했다. 이곳에서 유람선을 빌려 타고 북한 쪽으로 붙어 한 시간가량 삭주군 청수지구를 살펴볼 수 있었다. 산등성이까지 파먹은 다락밭에선 교사와 어린 학생들까지 나와 농사일을 돕고 있었다. 낡은 목탄차는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힘겹게 황톳길을 달렸다.

중국 오성홍기가 달린 선박이지만 손을 흔들며 “안녕하세요”를 외치는 일행의 모습에 북한 주민들은 한국에서 온 손님임을 직감하는 듯했다. 청년 오디세이에 참가한 여대생 몇몇이 팔을 들어 하트 모양을 만들고 “사랑해요”라고 외치자 한두 명은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다. 정은영(동국대 북한학과)씨는 “우리말로 인사를 건넸지만 대부분 외면당해 마치 짝사랑을 하고 있는 느낌”이라며 “하지만 언젠간 우리와 함께할 동포들이란 생각으로 통일을 준비해야겠다”고 말했다.

신의주와 마주한 중국 단둥(丹東)에서는 북한의 핵 도발과 중국의 대북제재 동참으로 냉랭해진 양측의 분위기가 감지됐다. 지난해 10월 ‘100년 만의 재개장’을 알리며 문을 연 호시(互市)무역구에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몇몇 중국 상인만이 건축자재 등을 쌓아 놓고 손님을 기다릴 뿐이었다. 북·중 양쪽을 번갈아 가며 장이 열린다는 뜻의 ‘호시’라는 이름이 무색했다.

한 관계자는 “여기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신(新)압록강대교가 열려야 이곳이 살아난다”고 말했다. 중국 지원으로 건설돼 완공 상태에 있지만 북한 측이 아직 개통하지 않고 있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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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일보] “여기엔 미래가 없다며 엄마는…” 탈북자 사연에 눈물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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