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봇도 중국천하…"2050년엔 인간 월드컵 우승팀 꺾겠다" [중국 AI굴기 현장리포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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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21일 브라질 살바도르에서 ‘2025 국제 로보컵대회’가 열렸다. 로보컵은 월드컵을 본떠 만든, 로봇들이 100% 자율적으로 경기를 펼치는 축구 대회다. 로보컵에 포함된 다양한 종목 중에 으뜸은 ‘어덜트 사이즈(Adult-size·실제 사람 크기) 휴머노이드 로봇 리그’ 경기다. 이 리그가 꿈꾸는 최종 목표는 2050년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구성된 로봇팀이 인간의 월드컵 우승팀을 상대로 경기를 치러 승리하는 것이다. 손흥민 같은 선수 11명이 뛰는 인간 팀을 상대로 휴머노이드 11대가 경기를 뛰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최근 중국에서 휴머노이드 로봇들의 단축 마라톤 경기가 열렸던 것을 감안하면, 머지않은 미래에 로봇들이 축구경기를, 그것도 월드컵 우승팀을 상대로 갖는다는 것도 가능할 법한 일이다. 월드컵 우승팀을 상대로 로봇이 이기는 경기를 치르겠다는 것은 인간의 신체적, 지적 능력을 뛰어넘어 보겠다는 야심 찬 목표다.
2025 로보컵은 중국산 휴머노이드가 대세
로보컵 경기 규정은 월드컵 룰에 맞춰 매년 더 어려워진다. 필자는 지난 수년간 로보컵 휴머노이드 어덜트 사이즈 리그에 참여하며, 휴머노이드 로봇의 발전을 지켜봐 왔다. 최근 그 변화 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중국팀들의 괄목할만한 성장이다. 올해 경기에 참여한 4개 팀 중 3팀이 중국 팀(칭화대 2팀, 저장대 1팀)이다. 나머지 한 팀은 미국 팀(텍사스 오스틴대)인데, 미국인 교수가 이끄는 이 팀의 연구원들은 대부분 중국인이고, 중국산 휴머노이드 로봇을 무료로 지원받아 경기에 참여하고 있다. 다시 말해 2025년 로보컵 휴머노이드 어덜트 사이즈 리그는 온통 중국산 휴머노이드 천지다. 그간 출전했던 각국의 개성 넘치던 다양한 형태의 휴머노이드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어쩌다 이런 결과가 생긴 걸까. 이 결과의 원인은 무엇일까.
‘제조2025’ 외친 중국, 로봇 기술연구 가속
그 답은 필자가 최근 ‘2025 평화 오디세이’ 여정에 참여하며 목격했던 중국의 과학기술 굴기에 있었다. 2015년 5월, 중국은 첨단 제조업 중심의 산업 현대화를 목표로 하는 ‘제조2025’를 선포하고 로봇·AI·5G·반도체·신에너지 차량·바이오·항공우주·첨단소재 등 10대 전략산업 육성을 천명했다. 그러자 미국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이를 단순한 경제문제가 아닌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2018년 중국과 무역전쟁을 시작했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부과와 함께 첨단 반도체 수출 제한,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술기업에 대한 차단 등을 단행했다. 이른바 기술 디커플링이 시작된 것이었다. 미국의 이러한 디커플링은 결과적으로 중국의 기술 굴기를 가속했다.
평화 오디세이 2025의 여정에 함께하게 됐을 때, 확인하고 싶었다. 지금 중국 안에서 정말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번 평화 오디세이 여정은 상하이에서 시작해 저장성까지 이어지며 중국의 인공지능 및 로봇 기업, 대학을 방문하는 일정으로 채워졌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로봇 스타트업 딥로보틱스다. 이곳의 주력은 4족 로봇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로봇 개와 같은 형태다. 전통적인 4족과 차이가 있다면, 네 개의 발끝에 바퀴를 장착해 주행과 보행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형태라는 점이다.
사륜4족 먼저 개발 스위스보다 상용화 빨라
딥로보틱스의 사륜 4족 로봇인 링스 M20은 평화 오디세이 일행에게 평탄하지 않은 험지를 달리고 계단을 오르는 등의 모습을 선보였다. 그들의 빠르고 안정적인 구동은 일행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주행과 보행을 동시에 구현하는 사륜 4족 로봇이 딥로보틱스만의 고유한 기술인가하면, 그렇지 않다. 대표적으로 비교해 볼 만한 것이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의 로보틱 시스템즈랩에서 개발한 애니멀(ANYmal)이다. 애니멀의 첫 프로토타입이 완성된 것은 2015년이었으니, 시기적으로도 딥로보틱스의 사륜 사족보다 앞선다. 그럼에도 필자가 두려움을 느끼며 주목했던 부분은 딥로보틱스는 이미 상용화에 진입했다는 점이었다. 필자는 아직 애니멀이 상용화되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현장 투입된 중국로봇, 학습 데이터 쌓인다
상용화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경제적 이익 때문만은 아니다. 상용화, 즉 로봇이 현장에 투입되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은, 현장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학습하여, 해당 로봇의 인공지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데 진정한 의미가 있다. 현재 링스 M20은 발전소 등에 투입돼 경비와 감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발전소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과 이에 대처하기 위한 학습용 데이터들을 수집하고 있다는 뜻이다. 현장에서 수집할 수 있는 학습용 원 데이터(Original Data)들은 피지컬 AI의 핵심이다. 애니멀과 링스 M20의 하드웨어 성능이 비슷하다면, 결국 승부는 인공지능에서 결정될 것이고, 더 많은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한 링스 M20이 인공지능에 있어 월등한 성능을 보일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 드론·로봇청소기 시장 가성비로 제패
어떤 원인이 서로 비슷한 두 로봇의 완전히 다른 현재 상황을 만들었을까. 바로 가격이다. 애니멀의 가격은 18만 달러로 알려져 있다. 링스 M20의 가격은 1만8000달러로, 애니멀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서로 비슷한 성능의 로봇 가격이 10배 차이 난다면, 과연 소비자는 무엇을 선택할까. 10배 차이 나는 가격은 다양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중국의 산업구조와 저렴한 인건비, 그리고 정부 정책의 뒷받침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럼 과연 이것이 사륜 4족 로봇에만 머물러 있을 현상인가. 당연히 아니다. 몇 년 전만해도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수많은 드론 기업들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중국의 DJI가 드론 세상을 제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봇 청소기는 어떠한가. 국내에도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수많은 기업이 있었지만, 지금은 중국 로보락이 세계 시장을 섭렵했다.
한국 로봇기업, 큰 비용 탓 성장 기회 날려
지금 필자가 목도하고 있는 광경은 중국의 제조 2025 선언, 미국의 디커플링 정책, 다시 중국의 기술 굴기로 이어지는 모든 원인의 결과다. 필자의 팀은 올해 로보컵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경기가 열리는 브라질 살바도르까지 40시간에 가까운 이동 시간도 부담스러웠지만, 더 큰 이유는 비용이었다. 필자의 팀은 20여 명으로 구성되는데, 왕복 항공권에 숙박·체류비를 포함하면 매년 열리는 경기를 위해 평균 1억원 정도의 비용이 소모된다. 그런데 살바도르는 사전에 계산해보니 1억원을 훨씬 초과하게 드는 것으로 예상되었다. 필자의 팀은 기업과 대학이 연합한 팀이다. 아무리 1년 살림을 알뜰하게 산다고 해도, 필자의 회사 같은 스타트업이 참여하기엔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영리기업도 이런데, 대학으로만 이뤄진 팀은 오죽할까. 그간 큰 비용이 들어도 필자의 팀이 기를 쓰고 로보컵에 참여해온 이유는, 로보컵을 준비하는 동안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의 진보 때문이다. 그런데 그 기술적 진보가 비용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히면 번번이 주저앉게 된다.
정부, 로봇시장서 경쟁 가능토록 지원해야
휴머노이드는 주권산업이다. 모든 로봇이 저마다 중요성을 띄고 있지만, 인간의 형상을 닮은 휴머노이드는 특유의 범용성 덕분에 다른 로봇들과는 혁신적 파괴력의 수준이 다르다. 전투기를 만들 수 있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국방력의 수준이 다르듯, 앞으로 휴머노이드를 직접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갖춘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국력은 달라질 것이다. 그런 주권산업인 휴머노이드가, 중국의 기술패권 앞에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누군가는 경쟁을 통해 더 강해지는 법이니, 휴머노이드 산업의 문을 완전히 개방하고 무한경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대한민국의 휴머노이드를 최전선에서 지켜본 경험에 의하면, ‘경쟁’도 그럴 만한 힘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열매를 원하는 농부는 씨앗을 파종하고,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릴 때까지 정성으로 돌본다. 식물은 일정 수준 뿌리를 내려야 비바람을 맞아도 견뎌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뿌리도 내리지 못한 새싹에 너는 왜 경쟁에 도태되었는지 묻는다면 그것이 과연 공정한가. 평화 오디세이 여정을 통해 비바람을 품은 거대한 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보았다. 이제 겨우 싹을 틔우기 시작한 대한민국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이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릴 때까지, 정부가 농부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 2026년 로보컵 경기 개최지는 대한민국의 인천이다.
☞엄윤설=숙명여대 공예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버지니아커먼웰스대 대학원에서 키네틱 아트(kinetic art)를 전공했다. 귀국 후 로보티즈 등에서 근무하다, 2018년 남편인 한재권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와 함께 휴머노이드 로봇 스타트업 에이로봇을 창업했다. 본인은 최고경영자(CEO)를, 한 교수는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고 있다. 현재 K-휴머노이드 연합 총괄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엄윤설 에이로봇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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