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권력의 함정과 이란 전쟁의 교훈
본문
군사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을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장’이라고 말했다. 전쟁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고 그래서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치른 전쟁 중 분명한 목표가 있었던 사례가 1950년 한국전쟁이나 1991년 걸프전쟁이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은 목표가 불분명했고 결과도 좋지 않았다.
아쉽게도 이번 전쟁은 후자의 범주에 속할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공격 목표는 수시로 변했다. 개전 초에는 정권 교체를 내걸며 이란 국민들의 봉기를 촉구했다. 그다음엔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고 참수 작전에도 정권이 흔들리지 않자, 미국이 받을 수 있는 리더를 세우라고 요구했다. 지금은 이란의 재래식 군사력을 파괴해 승리했다고 강조한다.
목표가 불분명하면 언제 어떻게 전쟁을 끝내야 될 지도 불확실하다. 이란은 미사일 공격을 걸프 지역 전반으로 확산시켰고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서 세계 경제가 엄청난 혼란에 빠져들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조기에 승리를 선언하고 서둘러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출구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까? 미국의 종전 의도를 이스라엘과 이란이 순순히 따라줄지 의문이다. 혹시 성공해도 이란 문제는 해결이 아니라 봉합에 그칠 것이다. 모즈타바 하메네이 통치하의 이란 정권은 핵무기 개발을 서둘러 미래에 더 큰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막으려면 농축 우라늄이나 시설 제거를 위해 지상군 파병이 불가피한데,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파병을 극히 꺼리고 있다.
설령 모즈타바 정권을 축출해도 새 정권의 안정된 통치는 기대 난망이다. 혁명수비대를 중심으로 하는 현 집권 세력은 복수심에 불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안정된 통치를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그런 내란 상태를 이스라엘은 반길 수도 있지만 미국과 걸프 지역, 그리고 세계 경제는 지속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다. 결국 그러한 상황의 통제를 위해 상당수 미군이 중동에 계속 매여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양상의 이란 전쟁이 국제 정치 전반에 미치는 파장도 심각하다. 첫째, 2003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전 개전 당시에 그랬듯이, 트럼프 행정부도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을 과신했고, 군사적 승리가 정치적 목표 달성을 쉽게 가져올 것으로 낙관했다. 강대국 권력의 함정이다. 그 결과 지난 15년 동안 실제 이행되지 못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 이후의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전략은 앞으로도 계속 미뤄질 것이다. 미국의 국제 개입을 강하게 비판해 온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중동에 발목 잡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이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수렁에 빠져있을 때 조용히 아시아와 세계 도처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앞으로도 중국은 미국이 이란 전쟁에 매여있는 상황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다. 군사적으로도 미국의 무기 재고가 줄고 방산업체의 생산 능력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억제 능력도 약화될 것이다. 결국 중국이 이란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 납치 작전과 이란 공격을 통해 부정적 선례를 남겼다. 급박한 상황이 아닌데도 국제법이나 국제 규범을 무시하고 군사력을 사용했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지도자들은 이것을 유심히 바라보고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언젠가 필요하다면 그들도 국제 규범을 무시한 채 주변 지역에서 군사력을 사용할 것이다. 자국민을 수천 명(일부 내부 문건은 수만 명)이나 학살한 이란 정권은 국제적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들을 응징하는 방식에서도, 힘이 아니라 명분을 앞세워야 했다.
이란 전쟁이 한국에 주는 함의는 무엇인가? 첫째, 시급한 것은 드론 전력의 강화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에서 드론이 핵심 전력으로 등장했다. 최근 주한미군 기지에서 패트리엇 미사일과 사드 일부가 중동으로 빠져나갔고 대북 억제 능력 약화가 우려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말린다고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스스로 가능한 방안을 동원해 방위력을 보강하는 것, 그것이 자강이다. 드론 가격은 패트리엇 미사일의 100분의 1(요격 드론은 1000분의 1) 수준인데 성능은 탁월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드론 산업 역량이 세계 5위권인데, 느린 행정 절차와 관료주의가 발목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중국의 저가 드론 공세도 문제다. 결국 정부가 업계를 집중 지원해서 K-드론의 생산 능력을 급속히 늘려야 한다. 국민 생명이 걸린 안보 문제이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의 강한 방산 능력을 대미 협력의 정책 수단으로 적극 활용할 방도를 모색해야 한다. 조선업에 버금가는 대미 외교의 레버리지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미국은 세계 도처에서 필요한 무기를 제대로 공급하기엔 생산 능력이 턱없이 뒤진다. 한·미 방산 협력을 한층 강화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은 특별한 나라이기에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카드로 삼을 필요가 있다.
1~2년 전만 해도 설마설마하던 난세가 눈앞에 닥쳐왔다. 그 어느 때보다도 냉혹한 국제 정치 현실 인식, 전 국민의 결속, 영민한 전략이 필요한 험난한 순간이다.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전 외교통상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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