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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저출산 정책 실패, 청년 실업에 반복해선 안 된다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26-05-13 14:00    6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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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과 자리를 함께하다 보면 같은 한탄을 자주 듣는다.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아 경력자가 됩니까?’ 출발선에 서보기도 전에 탈락이 확정된 셈이다. 취준생 10명 중 8명이 ‘업무 경험과 경력개발 기회 부족’을 가장 큰 애로로 꼽았다는 조사도 이 현실을 그대로 비춘다. 경험이 없어 일을 못 구하고, 일이 없어 경험을 쌓지 못하는 악순환이 한 세대를 가두고 있다. 전문직이라고 다르지 않다.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도 수습 기관을 구하지 못한 미지정 회계사가 누적 600여 명에 이르고, 일부 해엔 합격자의 70%가 백수로 남았다. 시험을 통과한 합격자들이 정부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장면은, 첫 경력이 얼마나 희소한 자원이 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청년실업률은 전체 실업률의 두 배 가까운 수준에서 이미 고착되고 있다. 


한국은행의 최근 분석은 이 변화를 통계로 확인해 준다. 2022년 하반기 이후 3년간 청년 일자리 21만1000개가 줄었는데, 그 98.6%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사라졌다. 같은 기간 50대 일자리는 20만9000개 늘었고, 그중 14만6000개는 오히려 AI 고노출 업종에서 새로 생긴 자리였다. AI가 청년이 맡던 코딩·자료조사·기초 분석은 대신하고, 경력자의 암묵지와 관리 업무는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뜻이다. 한은은 이를 ‘연공편향형 기술변화’라 부르지만, 쉽게 얘기하면 ‘AI는 젊은 손을 밀어내고, 나이 든 머리엔 날개를 달아준다’는 이야기다. 기업의 셈법은 단순해진다. 서툰 신입을 가르치는 비용을 들이느니, 지금 있는 경력자에게 AI 도구 하나를 안기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다.

그러나 이 셈법의 위험은 사회만의 것이 아니라 기업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 지금 하던 일을 AI로 더 잘하게 되는 것이 기업의 미래 경쟁력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기업은 늘 새 분야에 도전해야 살아남고, 신입은 그 도전의 가장 기초가 되는 씨앗이다. 신입을 뽑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현재 방식을 더 열심히 하면서 지금 자리를 지키겠다는 선언이며, 단기 효율을 쥐는 대가로 장기 경쟁력의 씨앗을 스스로 말리는 일이다. 오늘의 효율이 내일의 기반을 잠식한다.

이 위기의 본질은 속도다. 인구는 느리게 줄어든다. 위기를 알아채는 데도, 추세를 되돌리는 데도 한 세대가 걸린다. 반면 신입 채용의 붕괴는 빠르고 조용히 진행된다. 채용 시즌 한두 번만 ‘경력자만’ 때문에 돌아서도, 그해 졸업생은 평생 따라다니는 공백을 안는다. 첫 직장의 공백은 단순한 시간 손실이 아니라, 평생 임금과 경력의 궤적을 휘게 만드는 흉터다. 인구 감소가 ‘총량의 위기’라면, 신입의 실종은 ‘입구의 위기’다. 신생아 없는 사회가 중장기적으로 나라의 존립을 위협한다면, 신입 없는 사회는 중단기적으로 기업과 경제, 그리고 공동체를 동시에 쇠약하게 만든다.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가 미래를 잃듯, 신입을 뽑지 않는 사회는 현재를 잃는다. 속도만 다를 뿐, 둘 다 국가의 운명을 바꾸는 문제다.

기시감이 짙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983년 이미 대체출산율 2.1명을 처음 밑돌았지만,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산아제한은 1980년대 중반까지 관성처럼 이어졌다. 정부가 출산장려로 방향을 튼 것은 2006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이후의 일이다. 그동안 200조원이 넘게 투입됐지만, 오늘 출산율은 0.7명대에 머문다. 방향을 늦게 틀면 아무리 많은 예산을 부어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구문제에서 이미 한 번 혹독하게 치렀다. 같은 실수를 신입에서 반복할 여유가 없다.

발상부터 바꿔야 한다. ‘대학이 변해야 한다, 기업이 신입을 더 뽑아야 한다’는 한가한 권유 수준으로는 어림없다. 이제 국가는 청년에게 단순 생계지원이 아니라 첫 경력을 보장해야 한다. AI 시대의 복지는 기본소득이 아니라 ‘첫 경력 보장제’다. 모든 청년이 졸업 후 1~2년 안에 공공·민간 프로젝트에서 유급 실무 경험을 쌓고, 그 경력을 사다리 삼아 다음 단계로 올라설 수 있어야 한다. 병역은 국가가 책임지면서, 왜 첫 경력만 시장에 통째로 맡기는가. 한 발짝 더 나아가, AI·디지털 전환 보조금을 받는 기업에는 일정 비율의 신입 채용과 훈련을 의무화해야 한다. 설비와 서버에 투자한 기업만 우대할 게 아니라, 사람을 뽑아 경력을 만들어낸 기업에 더 큰 세제 혜택을 줘야 한다. 국가 지원으로 AI를 들여놓고 신입은 줄인다면, 그것은 혁신이 아니라 세대 편식일 뿐이다. 공장 증설보다 시급한 것은 경력의 증설이다.

국가는 더 이상 노동시장의 구경꾼일 수 없다. AI 시대의 노동정책은 실업률을 관리하는 일이 아니라, 사회가 스스로 경력을 재생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이다. 신생아 없는 사회가 지속될 수 없듯, 신입 없는 경제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씨를 뿌리지 않는데, 어떻게 과실을 거두겠는가.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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