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석좌교수] 대변화의 시작, 우리는 준비돼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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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 영국은 발전과 분열, 패권과 해체의 기로에 서 있었다. 애덤 스미스가 1776년에 출간한 『국부론』은 그간 의심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자본주의를 본격적으로 수용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비슷한 시기 증기기관 혁명까지 일어나면서, 영국에서는 신분이나 학력과 관계없이 기술과 자본만 있으면 거부가 되는 길이 열렸다. 반면 기계화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는 공장의 기계를 파괴하고 고용주를 공격하는 러다이트운동을 벌였다. 막대한 돈이 몰려들어 신전(神殿) 같은 저택에 사는 부유층이 등장한 반면, 어린이와 임산부가 탄광에서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는 참혹한 현실이 공존했다. 패권 경쟁도 치열했다. 영국은 나폴레옹의 프랑스에 맞서 10년 동안 전쟁을 치렀다. 트라팔가르해전에서 패한 프랑스는 영국과 유럽대륙의 무역을 봉쇄했다. 최종 승부처였던 워털루전투에서 영국이 패했다면 대영제국의 해체는 물론 세계사의 흐름이 바뀌었을 것이다.
거대한 변화의 시기가 다시 도래했다. 19세기에는 인류사 초유의 산업혁명,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제도의 수용과 민주주의의 확산, 그리고 세계 패권 경쟁이 동시에 휘몰아친 격동의 시대였다. 이중 단 하나만으로도 세계를 뒤흔들만한 사건들이 함께 진행됐다는 사실은 당시 변화의 크기와 깊이를 가늠하게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AI가 이끄는 초거대 산업혁명의 가능성,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약화, 그리고 미·중 패권 경쟁이 긴밀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세계사적 대변화는 바로 이럴 때 나타난다. 거대한 기회와 위험이 공존하면서, 매우 큰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세상을 흔들 것이다. 개인은 물론 국가의 운명도 이 시대를 어떻게 버텨내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이 대변화에 얼마나 잘 준비돼 있나.
AI 혁명은 증기기관 혁명보다 더 광범하고 급격한 창조적 파괴를 예고한다. 인간보다 힘이 센 동물은 존재했지만, 지능에서 인간을 앞서는 개체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이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뀐 세상에 살고 있다. 창의적인 분야에서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소수의 부자와 지능형 로봇의 도입이 어려운 영역에서 육체·감정노동을 이어가는 다수 사이의 양극화가 앞으로 더 크게 벌어질 수 있다. 일자리 파괴 속도도 훨씬 빠를 것이다. 물리적 기계의 도입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디지털 네트워크에서 신기술은 광속으로 전파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일자리 생태계가 안착하기 이전까지 수십 년의 과도기 동안, 대량 실업과 양극화, 그로 인한 사회적·정치적 갈등은 불가피해 보인다. AI의 윤리 규범을 적기에 만들지 못하면 인간과 AI가 충돌하는 사태까지 올 수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은 장기화하며 기술혁명이 초래하는 변동성을 증폭할 전망이다. 양국은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다. 그만큼 동원할 물자나 인력이 풍부하며 경제적 충격에도 견디는 힘이 강하다. 식민지로부터 자원이 공급돼야 패권 유지가 가능했던 영국이나, 위성국 없이는 미국과 대결하기 어려웠던 소련과는 체급이 다르다. 영국은 식민지 관리에 큰 비용을 지출할 수밖에 없었으며, 본국과 식민지를 잇는 긴 해상로는 상대국의 공격에 취약했다. 소련도 다른 사회주의국가와의 안보 및 경제동맹이 없었다면 패권 도전국으로서의 위상이 그렇게 높진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 중 한 나라가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지 않는 한, 이 패권 경쟁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될 듯하다. 그 결말 전까지 세계는 끊임없이 요동칠 것이다.
미·중 양국 내부의 심각한 취약성은 이 시대를 더욱 위험하게 만든다. 중국의 아킬레스건은 경제와 정치의 충돌 가능성이다. 1차 산업혁명 이후 프랑스와 독일, 러시아는 이 모순을 해결하지 못해 파국을 맞았다.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으로 경제적 몸집은 커졌지만, 영국과 달리 후진적인 정치 제도로 인해 사회적 갈등을 수용하기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프랑스와 독일은 외부로 힘을 투사해 전쟁을 일으켰고, 러시아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내부 폭발이 일어났다. 중국 정부는 더 많은 정치적 권리를 요구할 국민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이전엔 일자리와 소득 증가로 민심을 얻었지만 이제 그 힘은 소진되고 있다. 더욱이 중국 정부가 기대하는 과학기술 주도 성장은 일자리를 줄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약점도 만만치 않다. 안정과 발전의 근간인 민주주의가 양극화로 흔들리고 있다. 최고조에 달한 소득 및 부의 불평등이 AI 혁명으로 한층 심화한다면 가뜩이나 취약해진 민주주의가 이를 견뎌낼 수 있을까.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결국 민주주의가 버팀목이자 해결책이다. 그러나 보수는 법치를 무너뜨렸고, 진보 여당은 민주주의 핵심인 견제와 균형을 뒤흔들고 있지 않은가. 이런 정치로 과연 격변의 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을까. 세계사적 대전환을 도약의 기회로 바꿀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운명적 갈림길에 섰다.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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