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철 전 쿠웨이트 대사] 중동 의존 벗어날 에너지 대전환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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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제 정세는 에너지 안보의 본질을 다시 묻고 있다. 중동에서는 미국과 이란 간 최고조의 긴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쿠웨이트는 지난달 16일 원유 및 석유제품 수출에 대해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하였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전으로 굳어지며 에너지를 ‘무기’로 쓰는 시대를 공식화하고 있어,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국제 유가와 공급망 불안은 이제 일시적 변수가 아니라 구조적 상수로 고착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다. 우리는 원유의 7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는 구조이며, 원유 및 석유제품 수입액은 국가 총수입액의 약 18%인 1131억 달러에 이른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구조적 취약성으로, 중동에서 들어오는 원유 도입량 중 약 95%가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다. 호르무즈해협이 흔들리는 순간, 곧바로 국내 산업과 물가는 흔들리게 된다. 이번 쿠웨이트발 리스크가 상징하는 바는 분명하다. 바로 특정 지역과 해상 수송로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에너지 체계는 언제든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를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유럽은 값싼 러시아산 가스에 의존하다가 전쟁 이후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에너지 의존은 곧 전략적 취약성이라는 교훈이다. 한국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지금과 같은 구조를 유지한다면, 다음 위기는 ‘가격 상승’이 아니라 ‘물리적 공급 차질’로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스페인은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스페인은 2021~2030년 국가에너지·기후통합계획(PNIEC)을 통해 총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81%까지 끌어올리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후 태양광과 풍력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을 빠르게 끌어올리며 전력 자립도를 높이는 국가 생존 전략을 실시하고 있다.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지만 전력망 투자와 에너지저장시스템(ESS) 구축으로 외부 충격에 흔들림 없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에 세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중동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공급망 다변화는 ‘선언’이 아닌 ‘구조 개편’이어야 한다. 세계 5위권의 원유 수입국인 한국에 수입선 다변화는 더 이상 구호가 아니라 생존전략이다. 높은 중동 원유 의존도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미국, 호주, 아프리카 등으로 수입선을 확대하여 지정학적 리스크를 분산하는 포트폴리오 전략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에너지 외교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즉, 주요 산유국과의 에너지 협력 채널을 강화하고, 일관성 있고 지속적인 에너지 자원 외교를 실시하여 공급 계약의 안정성과 가격 교섭력을 높이는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둘째, 재생에너지를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끝내야 한다. 태양광이냐 원전이냐의 이분법으로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다. 핵심은 ‘안정적인 전력 시스템’이다. 이제는 AI시대·탄소중립시대를 맞이해 전기화에 초점을 맞추고, 재생에너지 등을 통해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가장 긴요한 과제가 되었다. 아울러, 단순히 발전 비중을 늘리는 것을 넘어, 송배전망 확충과 ESS 구축을 통해 전력 시스템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 재생에너지와 전력 인프라에 대한 전략적 투자가 필요하다.
셋째, 에너지 정책과 산업 정책을 통합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반도체, 배터리, 철강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 없이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따라서 에너지 전환 계획은 산업 공정의 전기화 로드맵, 핵심 산업 클러스터에 대한 전력 인프라 우선 공급 계획과 긴밀히 연동돼야 한다. 즉, 우리나라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새만금 이차전지 산업단지, 포항·광양의 철강 벨트 등 국가 전략 산업이 집중된 지역에는 안정적이고 충분한 전력 공급이 보장되어야 한다.
현재의 글로벌 에너지 위기는 한국에 ‘위험’인 동시에 ‘전환의 기회’다. 리스크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에너지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는 전략적 결단이 요구된다. 스페인의 사례가 보여주듯, 에너지 안보는 기술·정책·인프라가 결합된 종합적 접근이 있어야 지속가능한 미래를 보장할 것이다.
유연철 전 쿠웨이트 대사·리셋코리아 기후변화대응 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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