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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 북한 전문가의 베이지안 업데이트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26-07-16 10:09    3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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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필자가 처음 쓴 중앙시평의 제목은 ‘통일소박 없는 대박론은 통일도박’이었다. 민간 주도의 경제협력을 통해 북한의 시장 활동을 촉진하는 소(小)박이 전제돼야 대박도 가능하다며 당시 정부의 통일정책을 비판했다. 이후 1년 반 동안 남한의 적극적인 대북 관여를 주장하는 칼럼을 연이어 게재했다. 그러나 2016년 1월 초, 북한은 4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그 직후의 칼럼에서 필자는 북한경제를 겨냥한 제재를 제안했고, 3월에는 유엔 안보리의 첫 번째 경제제재보다 더 강력한 제재안을 제시했다. 그러자 보수 진영의 대표적인 지식인은 작고하시기 전 “드디어 김 교수가 정신을 차렸다”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진보 진영의 유력 정치인은 전쟁을 막기 위한 가장 평화적인 대책이 경제제재라는 필자의 설명에 “제재는 진보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라며 질타했다. 필자는 새로운 증거에 따라 기존 판단을 수정하는, 이른바 ‘베이지안 업데이트(Bayesian updating)’를 했을 뿐인데 일부는 이를 이념의 차원으로 받아들였다. 


최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Victor Cha)도 베이지안 업데이트를 시도했다. 대북 강경론자로 알려진 그는 최근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서 비핵화 대신 핵 위험 관리로 정책 목표를 수정하자고 제안한다. 제재는 실패했으며 다른 정책 수단도 없는 상황에서 북핵 고도화와 북·중·러 밀착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다. ‘차가운 평화’라는 차악(次惡)을 선택해서라도 전면적 핵전쟁이란 최악을 막아야 한다는 충고다. 또 미국은 전력 운용의 효율화를 위해서도 필요한 주한미군 감축을 북한과의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자고 주장한다. 전문가는 사실이 드러나면 생각을 바꾸는 지적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빅터 차의 태도는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그의 베이지안 업데이트는 북한 내부라는 중요한 증거를 놓쳤다. 김정은은 2012년 첫 공개연설에서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처참히 실패했다. 한국은행의 북한 성장률 추정치에 따르면, 2024년의 국민소득은 2012년의 99%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시장 활동을 반영하지 못하는 추정 방식의 한계를 고려하면 과장된 수치다. 북한의 성장 동력인 시장 활동은 경제제재와 코로나 사태에다 지금은 정권의 억압적인 정책으로 크게 위축됐다. 경제제재 이전 월평균 50달러 정도를 벌던 가계는 지금은 30달러 안팎밖에 벌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2023년 이후의 성장도 러시아 특수로 인해 무기 생산이 증가한 결과로 주민의 후생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 북한 주민의 김정은 지지도는 집권 초보다 현저히 낮을 것이다. 학점으로 치자면 김정은은 핵에서는 A, 경제 과목은 D를 받았다. 그런데 미국 전문가들은 핵 과목 점수만 업데이트한다.

북한 내부를 함께 고려한다면 지금은 비핵화에서 핵 관리로 정책 목표를 전격 전환할 때가 아니다. 핵 관리를 위한 협상이 미국의 정책으로 추진되는 순간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굳히게 되고 이는 거의 불가역적이다. 그러나 북한 내부와 지정학은 상수가 아니라 변수다. 앞으로의 전개 상황에 따라 한미가 비핵화를 장기 목표로 삼아 북한과 협상을 벌일 기회가 생길 수 있다. 빅터 차는 우발적 충돌이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우려하지만, 현재 협상력이 우위에 있다고 믿는 김정은은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충돌을 피하려 할 것이다. 또 북핵 관리로의 전환이 북·중·러 밀착을 약화할 것이라는 기대도 현실성이 낮다. 남한을 적대시하는 북한 정권뿐 아니라 남한 정부도 핵 국가로 인정된 북한과 경제협력을 추진하기는 어렵다. 결국 북한경제는 중국에 더 의존하게 된다. 남과 북은 멀어지고 가까워질 희망도 사라진다.

‘차가운 평화’는 지속될 수 없다. 북한의 근본적 취약성은 핵과 경제의 불균형이다. 이 불균형이 외부로 분출될 가능성이 남한과 주변국이 직면한 위험의 본질이다. 경제발전에 실패하면 주민의 불만을 억누르기 위해 강제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고 이는 체제 불안의 요인이 된다. 김정은 시대 권력층의 숙청 빈도가 이전보다 6배 증가했다는 사실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결국 북한의 핵과 경제 문제가 같이 해결돼야 지속적인 평화가 도래할 수 있다.

북한 내부를 알지 못하면 김정은의 전략에 말려들기 쉽다. 그는 북한의 강점만 외부에 노출해 미국 정부가 북핵을 인정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려 한다. 핵 능력과 외교적 성과에만 주목하는 전문가는 북한의 협상력이 절대 우위에 있으므로 한미가 크게 양보해서라도 빠른 평화를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빠른 평화가 반드시 좋은 평화는 아니다. 불충분한 증거만으로 기존 판단을 완전히 뒤집는 것은 성급한 전환이다. 진정한 평화를 위한 베이지안 업데이트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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