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 북·중의 만남, 정렬인가 균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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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시진핑 중국 주석은 2019년에 이어 두 번째로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세계의 시선은 북핵 인정 여부와 북·중의 지정학적 밀착 가능성에 쏠렸다. 결과적으로 회담 내용을 설명하는 문서에서 비핵화라는 단어는 사라졌다. 또 이번 방북 직전 시진핑이 북한 노동신문에 게재한 글에는 “시대적 의미” “시대적 사명”이란 표현이 새롭게 등장했다. 이는 중국이 북·중 관계를 단순한 양자관계가 아니라 국제 질서 재편의 수단으로 재정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시각에서 두 정상 간 만남이 양국의 긴밀한 지정학적 공조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그러나 북·중의 만남이 정렬의 시작인지, 균열의 예약인지는 불확실하다. 양국이 서로에게 원하는 바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북한을 중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 재편의 핵심 자산으로 삼으려 한다. 장기화, 첨예화되리라 예상하는 미·중 패권 경쟁에서 사회주의 북한이 갖는 지정학적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또 대만 유사시를 고려해서라도 군사 강국인 북한을 중국 진영에 확실히 묶어둘 필요가 있다. 문제는 북한의 대중 헌신도가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이다. 2018~2019년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때마다 북한이 친미로 돌변하지 않을지 염려한 시진핑은 김정은을 앞서 만났다. 최근 북·러 밀착으로 몸값을 높인 북한의 자율성 역시 중국에는 부담이다. 따라서 시진핑의 복안은 제도와 미래 비전이란 틀로 북한을 중국에 불가역적으로 결속시켜 대미 관계의 전략적 지렛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방북 직전 그의 노동신문 기고문과 정상회담 발언은 이런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시진핑의 노동신문 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단어는 “설계도”와 “전략”이다. 시진핑은 “중조(中朝) 관계 발전의 설계도”를 김정은과 함께 마련했다고 기술한다. “전략”이란 단어도 9번이나 사용한다. 기고문은 설계도와 전략이란 칼날이 “국제 질서”와 “패권주의”, 즉 미국을 겨냥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게다가 중국 언론에 따르면 시진핑은 정상회담에서 경제뿐 아니라 외교·군사·법 집행까지 아우르는 전방위적인 교류 강화를 제안했다. 요컨대, 시진핑은 공동의 설계와 전략이라는 틀 안에서 모든 분야에 걸쳐 소통·협력함으로써 양국의 발전은 물론 미국에 대항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자는 도면을 펼친다.
김정은은 다른 설계도를 들고 있다. 그는 대외관계를 상수보다 변수로 남겨두고 싶어 한다. 북한 체제에서 ‘설계도’는 최고지도자의 국가 전략을 뜻하는 핵심어다. 김정은은 주로 이를 핵이나 경제에 국한해 사용한다. 2016년 그는 신년사에서 “휘황한 설계도”를 말한 후 며칠 지나지 않아 핵 실험을 감행했다. 2021년 제8차 당대회에서는 ‘국가경제발전 5년 계획’을 “과학적인 설계도”라며 치켜세웠다. 대외 전략과 관련해 “웅대한 설계도”를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는 “조국의 존엄과 국익”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중국은 북한을 자신의 지정학 설계도 속에 편입시키려 하지만, 북한은 핵과 경제라는 자체 설계도를 완성하기 위해 중국을 이용하려 한다. 특히 핵 고도화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한 지금, 북한에 시급한 것은 경제적 실리다. 전면적인 전략 관계로 가자는 시진핑과 달리, 김정은이 원하는 것은 경제 중심의 선택적 협력이다.
중국이란 틀에 갇히기 싫은 북한은 노동신문에서 경제·무역·문화 분야의 협력만을 부각한다. “두 나라의 발전전략을 결합하자”라는 시진핑의 제안에 대해서도 김정은은 부담을 느낄 법하다. 중국이 개혁개방의 길을 걸었던 데 반해, 2019년 이후 북한은 오히려 사회주의 통제경제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과의 다양한 접촉도 결국 북한 주민이 외부 세계에 눈뜨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체제 유지를 어렵게 만든다. 중국의 번영을 체감한 주민들은 북한이 왜 이토록 뒤처졌는지, 그 책임을 김정은 일가에게 묻게 될 것이다.
향후 북·중 관계의 향방을 가를 분수령은 중국이 북한산 석탄과 철광석 수입을 전면 재개할지 여부다. 2016~2017년 발효된 대북 제재 이후에도 공해상에서 선박 대 선박의 환적이나 광물 원산지 위조 등의 방법으로 밀수는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밀수라는 특성으로 광물 수출량은 크게 줄었고 단가 역시 50%를 넘는 할인을 감수해야 했던 까닭에 북한의 외화 수입은 현저히 감소했다. 만약 중국이 유엔 안보리 제재를 무시하고 북한 광물을 공공연히 수입한다면 북·중 관계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차원으로 정렬됐다는 신호다. 중국은 미국의 압력을 견딜 각오를 했다는 뜻인 동시에 미국에 더욱 강하게 맞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반대로 북한 광물의 대중 수출이 이전과 대동소이하다면 김정은의 대중 불신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균열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화려한 말의 성찬이 끝난 뒤, 구조적 이해관계는 어디를 향할 것인가. 한반도는 어디로 나아갈까.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 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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