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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승 고려대 교수] 지나가지 않은 과거, 함께 감당할 역사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26-08-03 15:39    10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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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지 않은 과거’는 오래된 상처가 남아 있다는 뜻만은 아니다. 사실이 충분히 규명되지 않고 책임도 온전히 인정되지 않은 과거가 침묵과 신화, 정치적 동원을 거쳐 거듭 현재로 소환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문제는 과거 자체보다 그것을 다루는 현재의 방식에 있다.

프랑스 중부의 비시(Vichy)는 이러한 역설을 압축해 보여준다. 비시는 온천과 나폴레옹 3세 시대의 건축물로 알려진 휴양도시이자, 프랑스 현대사의 치욕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1940년 독일에 패한 뒤 필리프 페탱 원수가 이곳에 세운 정부는 나치에 협력해 반유대주의 법령을 만들고 유대인 검거와 추방에 가담했다.


전시 자유프랑스를 이끈 샤를 드골 장군은 해방 뒤 비시 체제를 프랑스 공화국의 정통 역사에서 배제하고, 자유프랑스와 레지스탕스를 국가 재건의 중심 서사로 삼았다. 국민은 다시 결집되었지만, 나치 협력과 방관의 책임은 오랫동안 뒤로 밀렸다. 역사학자 앙리 루소가 1987년 『비시 증후군』에서 분석한 것은 억눌린 과거가 다른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현상이었다. 그는 1994년 이 문제를 『비시, 지나가지 않는 과거』라는 제목으로 다시 제기했다.

역사 연구와 재판, 생존자의 증언을 거쳐 1995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유대인 검거와 추방에 대한 프랑스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고, 이후 역대 대통령도 그 인식을 이어왔다. 비시의 기억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나치에 저항한 프랑스와 협력한 프랑스를 함께 자국의 역사 안에 놓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도 지나가지 않은 과거가 있다. 식민지 협력과 독립운동, 광복과 국가 수립, 전쟁과 반공,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억은 여전히 현재 정치 속에서 경쟁한다. 광복절을 전후하면 “대한민국은 언제 시작되었는가”라는 질문이 되풀이된다. 한쪽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다른 쪽은 1948년 자유민주공화국의 제도적 출범을 강조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누가 대표하는가를 둘러싼 경쟁이 되어왔다.

그러나 1919년과 1948년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지워야 하는 두 개의 기원이 아니다. 3·1운동과 임시정부는 독립운동과 국민주권의 역사적 뿌리를 만들었다. 1948년은 헌법과 정부, 국제적 지위를 갖춘 대한민국이 현실의 국가로 출범한 시점이었다. 독립의 정신과 국가의 제도화는 서로 대체되지 않는다.

김구와 이승만도 마찬가지다. 김구는 독립운동과 민족정통성을, 이승만은 국가 수립과 생존을 대표한다. 두 사람은 해방과 분단을 바라보는 노선에서 충돌했지만, 그 대립 자체가 당시 독립국가 건설을 둘러싼 선택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이 두 사람을 함께 역사 안에 놓아야 독립운동의 이상이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의 국가로 이어지는 과정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다.

제1공화국은 오랫동안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서 비켜나 있었다. 4·19 이후의 민주화 서사와 5·16 이후의 개발국가 서사에서 각기 다른 이유로 주변화되었다. 이승만 정부의 권위주의적 통치와 국가폭력에 대한 평가는 분명해야 한다. 그러나 제1공화국 전체를 1960년의 붕괴로부터 거꾸로 읽으면 국가 형성기의 다른 측면은 묻힌다. 정부 수립과 국제적 승인, 한국전쟁기의 국가 생존, 미국의 장기적 안보공약을 확보하려 했던 외교는 더 깊이 분석할 필요가 있다. 찬양과 단죄 가운데 하나를 택하기보다 당시의 국제환경 속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친일·반일 논쟁에서도 식민지배의 폭력과 협력의 책임은 분명히 밝혀야 한다. 다만 ‘친일’이 구체적 행위를 넘어 현재의 상대를 낙인찍는 말이 되거나, 반대로 역사 문제를 현실 외교의 장애물로만 취급한다면 모두 역사를 단순화하는 셈이다. 국익을 위한 대일 협력과 역사적 책임의 확인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기억과 역사는 같지 않다. 기억은 공동체가 자신을 이해하는 방향을 만들지만, 역사는 그 기억이 단순화하거나 밀어낸 사실과 맥락을 복원한다. 기억 없는 역사는 사회적 의미를 잃기 쉽고, 역사적 검증을 거치지 않은 기억은 신화가 되기 쉽다. 독립과 건국, 김구와 이승만, 산업화와 민주화는 어느 한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다. 과거를 공동의 역사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책임을 흐리는 일이 아니라, 사실을 확인하고 책임을 구분하며 피해를 기록하는 일이다. 실패와 성취, 저항과 협력, 단절과 연속성을 하나의 역사 안에서 설명해 내야 한다.

과거를 끝없이 현재의 무기로 소환하면 공동체는 기억의 포로가 된다. 지나가지 않은 과거를 지나가게 하는 일이 망각이나 봉인을 뜻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기억을 어느 한쪽의 신화로 남겨두지 않고, 사실과 책임에 근거한 공동의 역사로 옮겨놓는 일이다. 그 복잡한 유산을 함께 감당할 수 있을 때, 과거는 현재의 갈등을 되풀이하는 기억에서 벗어나 미래를 준비하는 공동의 경험이 될 수 있다.

이재승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교수·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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